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팔복 설교 마태복음 5장 10절~11절

by 주님의 장바구니 2021. 1. 5.
300x250

팔복 설교 마태복음 5장 10절~11절


제목: "고난을 믿음으로 직면합니다" (2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선배는 하늘이고, 부처님과 친구다. 이런 말들이 오가는 학교였습니다. 그만큼 선배들에 대해 깍듯했습니다. 만약 선배들에게 깍듯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때리는 선배들에게 대항하지도 못합니다. 제가 살던 곳은 섬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섬에서 선배들에게 대항하면 대항한 사람은 학교를 그만 둬야 할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배는 1년 선배였습니다. 1년 선배중 저희 집 밑에 살던 “김* ”라는 이름을 가진 형님이 있었습니다. 이 형님은 주일만 되면 저를 자기 집으로 불러놓고 자기는 계속 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예배시간이 되면 저는 그냥 교회를 갑니다. 교회를 다녀오면 그 다음날 학교에서 엄청 맞습니다. 자기 말을 안듣고 개겼다는 이유입니다. 그 다음주가 됩니다. 그러면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예수님 믿음으로 오는 고난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부모님은 제가 주일에 교회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저희집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데 농촌이기에 농사도 함께 지었습니다. 평일에 농사일을 할 수 없기에 저희집은 주말에 농사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황금같은 주일에 교회를 간다고 하니, 거기에 경운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저희집에 저 혼자 뿐인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제가 교회가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갈 때 마다 부모님이 갖은 욕을 해댑니다. 교회가 밥먹여 주냐? 그러면 저는 예 점심 줍니다. 그러다 더 욕먹고 막 그랬습니다. 

 



고1때 예수님을 만나고, 고2때 더 뜨겁게 성령을 체험한 후 저는 고3때 친구들과 늘 마시던 술을 끊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친구들이 저를 불러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친한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렇다고 이전에 친하지 않던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는 것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나에게 당시 예수님 믿음으로 오는 또 다른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이든 잘되야 한다면, 제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려고 주일에 교회 갔는데 월요일에 학교가서 선배들에게 그토록 맞았을까요? 나는 믿음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데 왜 집에서는 그렇게 욕을 먹었을까요? 예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술을 끊었는데 왜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외로워 졌을까요? 도데체 왜 예수님을 믿었지만 이런 고난이 왔을까요?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저처럼 고난당하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성적 떨어지는데 교회 다닌다고 부모님들로 고난당하는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 때문에 점점 학교친구들과 멀어진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고난받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왜 고난이 오는데 행복하다고 하는걸까요? 예수님이 제정신이 아니시고는 설교중에 “너희가 나 때문에 고난받으면 행복해질걸” 이러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행복이라니요? 그래서 묵상하고 또 묵상하다 제가 좋아하는 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고난이 왜 행복한지 이해하게 되었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의 인사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화를 빌어주는 인사입니다. 사도바울이 신약성경에서 성경을 쓸 때 항상 빠지지 않았던 것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평화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평화를 빌어주는 인사를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수많은 시간 동안 받았던 외세의 침공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일제 강점기에 광복을 기다렸던 마음이 바로 평화를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세로부터 해방되는 날을 기다리며 늘 샬롬을 꿈꿨던 것입니다. 

 



그 샬롬은 구약성경에 예수님이 오시면 완성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전부터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산더대왕의 헬라제국,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지배 받은 이스라엘은 오랜 기 간속에서도 평화를 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예수님만 오시면 이 모든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에 구원자 예수님이 마태복음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은 여전히 로마의 침공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에서 해방 시켜줄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립니다. 700년을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믿은 예수님이 죽어버리니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그런데 3일만에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비록 육신은 여전히 로마의 압제가운데 있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게 됩니다. 육체적인 평화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출처 경안교회 담임목사 고원영

ⓒ Free-Photos 출처 Pixabay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