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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경 8복 마태복음 5장 9절

by 주님의 장바구니 2021.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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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8복 마태복음 5장 9절


제목: 참된 그리스도인은 화평케합니다 (1부)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갈등지수는2005년 통계에 의하면 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4번째로 높다고 진단을 했습니다.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갈등으로 인해 지불되는 사회갈등비용을 계산해 보니까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산정되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해 사람들이 서로 싸워서 서로 물어준 돈이 1년에 300조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통계가 다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갈등지수가 이제는 2위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왜 세계에서 2번째로 서로간의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300조면 가난한 사람을 도와 복지를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어쩌다가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 구조가 어떻든 역사적으로 서로가 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는 크고 작은 갈등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의 갈등지수는 세계 2위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안좋은 것은 다 상위권입니다. 이*률1위, 낙*율1위, 자*률1위, 여기에 더불어 갈등지수 세계2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혼은 부부가 갈등으로 생긴 것입니다. 자살률 역시 주변과의 갈등이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낙태도 보면 부적절한 관계로 갈등을 일으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갈등이 사회에 많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데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제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은 정책탓, 조상탓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갈등지수가 세계 2위가 된 이유를 우리 기독교인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화평케 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정치가나 시민운동가가 아닌 바로 그리스도인이 화평케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가, 학교의 우리 반이, 우리 가정이 화평한 공동체가 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저와 여러분이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화평케 하는 자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지어 화평케해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조차도 늘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의견이 다르고 상처를 입으면 서로 인사도 잘 안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교회갈등의 성경적 해결방법”이라는 책이 다 나왔겠습니까?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당연히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의 시초가 되었던 곳은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뜻은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교회는 평화의 터전위에 세워지는 곳 이라는 것입니다.

 



평화의 터전에서 세워진 교회에서 갈등을 풀고 평화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둘째, 평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198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분은 폴란드의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Lech Walesa)입니다. 노벨 평화상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벨평화상을 받은 “레흐 바웬사”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아들을 호되게,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호되게 두들겨 팬 적이 있는데 날짜를 따져 보니까 바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통보 받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화도 안낼 것 같은데, 그 사람도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화평케 하는 자로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9장 8절에 보면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참된 평강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 만나기 전에 마음속에 평강이 있었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평화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출처 경안교회 담임목사 고원영

ⓒ Free-Photos님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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